▲ 정왕룡 기자(전 김포시의원)

2010년 6.2 지방선거는 무상급식 선거였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천안함이라는 메가톤급 이슈에 메이저 언론의 의도적인 집중조명이 이뤄졌지만 선거현장의 체감이슈는 단연코 무상급식 논쟁이었다. 특히 광역단체장이나 시·도 교육감 후보들은 이 논쟁에서 비켜갈 수 없었다. 무상급식의 혜택범위를 놓고 전면적 적용이냐 선별적 적용이냐를 놓고 후보들은 의견을 밝혀야 했으며 이는 각 후보간 상호 토론장에서도 중심주제였다.

결과는 전국 9개도 중 7개도의 도지사가 야당으로 교체되고 서울, 경기, 전북 등 3개 지역에서 소위 진보교육감이 당선될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무상급식 논쟁여파는 이후에도 대한민국 정치지형을 출렁이게 만들었다. 6.2 지방선거에서 가까스로 신승한 서울시 오세훈 시장은 진보진영의 곽노현 교육감과 무상급식 추진을 둘러싸고 격렬한 대립을 하였다. 급기야 무상급식 찬반투표까지 강행하였지만 실패에 따른 사퇴로 보궐선거까지 초래했다. 2011년 10월 26일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6.2 지방선거 못지않게 친환경무상급식이 최대 화두였다. 결과는 박원순 후보의 당선이었고 진보진영은 이후 총선과 대선에 희망의 불씨를 지필 수 있는 주요한 동력을 확보하였다.

하지만 무상급식 의제를 등에 업은 진보진영의 승승장구는 여기까지였다. 4.11 총선과 대선에서의 연이은 패배와 곽노현 교육감의 낙마, 김두관 경남지사의 사퇴로 인한 정치지형의 변화는 무상급식 지형 확대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여기에다 그동안 급식분야 논쟁 과정에서 수세에 몰려있던 보수세력이 전열을 재정비하고 나섰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복지이슈를 선점하여 제법 의미있는 성과를 맛본 보수진영에서는 학교급식 분야에서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무상급식 추진과 일련선상에 있는 학교급식 직영화 추세에 제동을 걸려하고 있는 것이다. 급식 직영화및 운영과정에서 발생한 소소한 문제점 사례를 부각시켜 ‘소비자인 학생, 학부모의 시장 선택권’ 부활이라는 명분으로 급식 직영화 흔들기를 시작했다. 지난 6.2 선거에서 형성된 학교급식 토대 흔들기에 나선 것이다.

안타깝게도 여기에 맞서는 진보개혁 진영의 현 상황은 녹록지 않은 모습이다. 무상급식 이슈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진보정당의 존재감이 희미해져 버린데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정국 대응능력이 현저히 약화된 상태다. 여기에 새정치를 표방하며 바람을 일으키려 하는 안철수 진영의 정책구상은 아직 뚜껑조차 열어놓지 못하고 있다.

6.2지방선거와 학교급식 운동

학교급식은 교육적 사안이면서도 복지분야적 성격도 있고 농식품에 관련된 현안이면서 가장 민감한 정치적 이슈이기도 하다.

최근 학교급식 담당 체계를 중심으로 한 경기도 교육청의 조직개편안에 대한 중앙정부의 승인이 기피되면서 미묘한 긴장관계가 형성되고 있는 사례가 그 반증이기도 하다. 이러한 복합적 성격을 가진 탓에 급식 의제의 기본 성격이 지방정치 혹은 지역 생활정치 영역의 요소가 강함에도 불구하고 전국적 중앙정치 이슈로 과도하게 부풀려진 면이 있다.

운동진영 또한 그간 이러한 면을 인식하고 지역적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냉정하게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모든 현안이 쏟아져 나오는 선거정국의 특수한 상황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6.2 지방선거 후 지역에서 급식의제를 소화하고 받아안는 과정에서 어떠한 롤 모델을 만들었는지 추진주체 간에 진지한 자기점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미산과 진안이 마을 만들기의 상징이 되고 로컬푸드 하면 완주가 떠오르고 생협하면 원주가 연상되지만 친환경 무상급식 하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지역이 과연 얼마나 있는지 냉정히 되돌아 볼 일이다. 6.2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추진에 적극적이었던 다수의 광역· 기초단체장, 시·도 교육감을 배출하였음에도 임기가 종료되어 가는 시점에서 지역단위 롤 모델이 부각되고 있지 못한 점은 뼈아픈 대목이다.

친환경 급식운동 질적 도약 필요

그간 운동주체 간에 주요한 목표였던 학교급식법 개정이 가장 중요한 핵심사안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제도적 개선을 통해 국비를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안정적 재원운용의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주요한 과제임을 급식운동 진영에서 부정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문제는 무상급식이 어느사이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잊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작 이 사안의 중심주체라 할 수있는 학생과 학부모, 지역주민은 대상화되어 객체로 전락해버린 느낌이다. 무상급식 의제가 ‘친환경’이라는 개념으로 확장되고 지역급식센터 설립추진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지역사회 주민들은 이에 대한 관심이 예전같지 않다.

지난 대선에서 ‘복지’가 가장 중심적 화두였음에도 친환경 무상급식 의제는 여러 당면 현안 중 하나 정도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지방선거를 정확히 1년 앞둔 현 시점에서 주목해봐야 할 흐름이 있다.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경제 활성화와 대중적 참여 열기다. 전국적으로 이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곳이 서울시이며 그 한복판에 박원순 시장이 있다.

학교급식센터, 지역 실정에 맞게

이와 함께 주목해봐야 할 또 하나의 흐름이 로컬푸드 열풍이다. 협동조합과 로컬푸드가 만나는 중심지점에 바로 ‘지역과 주민’이 있다. 이 흐름을 어떻게 소화하고 받아 안느냐의 문제가 향후 친환경 급식운동의 질적 도약을 위한 관건이 될 듯하다.

또한 경기침체와 맞물려 전국 어느 지역이나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 중심 화두가 되어있다. 친환경 무상급식 추진이 이 사안과 어떤 직접적 관련이 있는지 설득력 있는 대중적 용어로 간명하게 풀어내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아직껏 복지를 ‘비생산적’ 정책영역으로 인식하는 고정관념이 강한 상황에서 ‘무상급식’ 또한 재정지출 측면만 부각되면 대중적 설득력이 약화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학교급식 센터 설립의 필요성이 당위성을 뛰어넘어 각 지역의 실정에 맞게 한층 더 풍부하게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

진보진영 대응방식 전환 필요

5월 29일자 중앙언론은 한가지 흥미있는 기사를 싣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내용 채우기에 답답해하는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서울시를 방문해 박원순 시장의 시책추진 사례를 경청하고 자료를 수집했다는 소식이다.

더불어 창조경제 요소에 대해 서울시 정책에서 많은 부분 강한 인상을 받았다는 소감도 전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상대를 찾아가 배우고 상대편 의제와 용어도 과감하게 벤치마킹하는 보수진영의 힘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의제의 기본성격상 진보적 성격이 강한 협동조합과 로컬푸드 이슈 또한 어느사이 월등한 여론선점 주도권을 무기로 보수진영이 잠식해 들어가는 형국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교급식을 고민하는 진보진영의 구체적 대응방식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그간 숱한 진보적 의제를 어렵게 밥상에 올려놓았지만 정작 대중에게 숟가락 떠먹이는 역할을 번번히 보수진영에 빼앗기고 만 진보진영의 대응이 향후 어떻게 이뤄질지 주목된다.

<정왕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