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쓴이 정혁기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졸업 후 금융, 교육, 언론, 출판 분야에 종사했으며 현재 도시농업, 도농교류, 농귀촌 분야의 일을 하고 있다.

시절 흐름이 5월 중순을 지나자 만나는 사람마다 날씨 얘기였다. 봄을 지나 완연한 여름으로 들어섰음을 느낀 탓이다. 날씨가 언뜻 봄이구나 하면 봄을 즐길 새도 없이 바로 여름이 돼버리니 사람마다 겨울이 지나면 여름이라고 안타까워할 만하다.

아닌게 아니라 지금 한반도 날씨 변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산업혁명 이후 세계적으로 오른 평균기온 보다 2배 이상 상승한데다가 대도시 콘크리트에 갇혀 사는 도시의 경우 열섬 현상 등으로 정도가 더 심할 것이니 기온상승으로부터 받는 체감온도는 더할 수밖에 없다.

농민도 이렇게 변한 날씨에 적응을 해야 하는데 농민들이 개별적으로 대처하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어서 정책적인 대처와 대책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 3~40년 농사를 지은 사람도 요즈음 날씨와 철을 종잡을 수 없다 한다.

그렇다 해도 아직까지는 6월은 돼야 여름이 제 모습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여름은 그 본래 뜻이 ‘열음’이라 하여 곧 열리는 것이니 6월에 열리는 것의 으뜸은 보리였을테다.

황토 먼지 날리는 봄철이 되어 혹한으로부터 벗어났지만 먹을 양식이 떨어져 가는 일명 ‘보릿고개’ 시절.

보리가 언제 나오나 고개 들고 보리밭을 쳐다보고, 고개 넘을 때 마다 푸른 보리밭 언제 누렇게 익나 기다렸을 것이니 분명 보릿고개를 넘겨 보리가 나오는 6월 초순은 보리의 계절이었다.

6월 첫 절기가 망종(芒種)인 것도 보리의 계절이었음을 말해준다. 망종의 망(芒)자는 씨 껍질에 까시레기(까끄레기)를 가진 보리, 벼 같은 것을 일컫고 있음도 6월이 보리의 계절임을 알려준다.

그리하여 6월은 보리 끄슬려 먹고 보리를 베고 타작마당을 열어 보릿고개를 넘기는 시절이었던 셈이다. 보리를 베면 곧이어 논을 만들어 또다시 까시레기 달린 벼 농사의 시작인 모내기를 해야 하는 철이었으니 6월은 보리수확, 논 만들고 모내기 하며 벅적이느라 뒤돌아볼 틈이 없었다.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는 이 시절을 이렇게 읊고 있다. 농가월령가의 5월은 지금 달력으로는 6월에 해당한다.

“오월이라 한여름 되니 망종 하지 절기로다
남쪽 바람 때 맞추어 보리 추수 재촉하니
보리밭 누른빛이 밤사이 나겠구나
문 앞에 터를 닦고 보리타작 하로리라
잘 드는 낫으로 베어다가 한 단 두 단 헤쳐 놓고
도리깨 들고 마주 서서 흥을 내어 두드리니
불고 쓴 듯 하던 집안 돌연히 벅적인다
가마니에 남은 곡식 이제 곧 바닥인데
중간에 이 곡식으로 입에 풀칠하겠구나
이 곡식 아니라면 여름 농사 어찌할까
천심을 생각하니 은혜도 끝이 없다”

6월의 작물로 또한 빠질 수 없는 것이 감자다. 중부지방의 경우 3월 말~4월 초 무렵 심은 감자는 6월 하순경이면 캔다. 추위가 아직 기승을 부리는 3월에 심고 또 심은 지 100일이 채 안 돼 캘 수 있으니 이 감자는 배고픈 농촌의 빠질 수 없는 재배 품목이었다.

▲ 감자꽃

감자를 ‘하지감자’라고 부르는 것도 수확시기를 말해준다. 하지가 6월 21일이다. 이 날을 ‘감자환갑’이라고도 불렀다고 세시풍속자료는 말하고 있다. 하지를 지나면 감자 잎줄기가 누래지며 수확의 때를 알려주는 것이다. 감자 전래시기가 19세기 초반이었으니 2백 년에 가까운 재배역사를 지닌 작물이다.

하지는 일 년 중 낮이 가장 긴 날이다. 햇볕이 가장 긴 시간 내리 쬐는 날이니 6, 7월 쌓인 햇볕이 풀과 나무를 키운다. 그래서 6월은 자라 올라오는 풀과 씨름을 벌이는 시기이기도 하다. 매고 뽑고 덮고 풀 단속을 벌여도 되돌아서면 어느새 쑥쑥 자라 오르는 풀.

작물의 생장 초기에 풀과의 경쟁에서 눌리면 농사를 망치게 돼서 성장 초기에 해당하는 6월은 밭매고 김매고 북돋으며 허리, 다리, 어깨, 고개가 쑤시고 아픈 시절이 아닐 수 없다. 텃밭농사를 해보겠다고 교외에 한 뼘 땅 분양받아 시작한 초보 농부네도 6월에 다른 일 핑계로 밭에 몇 차례 나가지 못하면 풀밭이 되어버려 지레 손들고 포기해 버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 오이

그 뿐이랴. 6월은 지난 초겨울 심은 마늘, 양파도 수확하고 콩도 심어야 한다. 밥콩으로 맛 좋은 서리태, 메주 된장콩인 백태도 이 즈음 파종해야 할 철이니 부지런히 새로이 밭 만들고 씨를 뿌려야 한다. 콩은 중부지방의 경우 6월 상중순에 파종하여 10월 중하순 경 수확한다.

‘농가월령가’에도 이 시기 계절작목들이 풍성하게 등장한다. 이슬에 젖은 오이 밭 오이를 시작으로 앵두, 약쑥, 들깨, 담배, 가지, 고추, 봉숭아 등등. 고추, 가지, 오이, 애호박, 들깨, 고구마 등 밭 관리를 하는 중에 아이들은 손톱에 봉숭아 물들이기로 즐거워하는 철이었음도 전해준다. 올 여름은 봉숭아 꽃잎을 모아 아이에게 전해주는 일을 잊지 말아야겠다. ‘농가월령가’의 말미는 이렇게 맺고 있다.

“맨드라미 봉숭아로 너무 즐겨 하지 마라
아기 어멈 방아 찧어 들바라지 점심하소
보리밥과 냉국에 고추장 상치쌈을
식구들 헤아려 넉넉히 준비하소
날이 새어 문을 나서니 개울에 물 넘친다
메나리, 농부가로 화답 하니 격양가(擊壤歌) 아니런가”

농가월령가 중 6월철을 노래한 이 부분은 다른 때 보다 농촌의 생활묘사가 정겹고 즐겁다. 현대의 농촌 풍경, 농업 현실과 너무 극적으로 대조되어 안타깝다.

▲ 앵두

▲ 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