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병권 식량닷컴 이사/이야기농업연구소장

“농업을 이야기하고 내 삶을 이야기 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하나요?”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고민도 해야 하고 쓰기도 하고, 사진도 찍어야 하고 궁리도 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행위의 기본은 이야기의 소재일지니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모든 일들의 기본이 분명 있으려니 싶어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살펴본 적이 있다. 조선시대의 생각들을 만들어 냈던 사람들의 기록도 읽었고, 농촌현장을 다니면서 나름대로의 시선으로 일을 만들어 가는 농부들의 시각에서 찾아보기도 했다. 같은 작물 같은 시기라도 농부의 설명은 다 달랐고, 꿈꾸는 희망도 제각각 이었다.

그 이후 나는 ‘보다(See)’라는 행위를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을 마다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세 가지의 경우에서 본다는 의미를 곱씹어 본적이 있다.

하나, ‘혜강 최한기 선생’

조선말 남들보다 한 발 앞서 살았던 기학(氣學)의 대가 혜강(惠崗) 최한기(崔漢綺) 선생은 “글을 쓸 때 가장 먼저 미루어 생각하는 일을 잘해야 한다. 미루어 생각하는 일을 잘하면 세상의 이치와 형세가 순수하게 펼쳐지고, 헤아리는 일 또한 통달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하나의 문체를 이룬다”고 했다.

미루어 생각하여 무언가를 얻은 사람은, 그 미루어 생각한 뜻을 내세워 첫머리에 쓰고, 그 다음에는 미루어 생각하는 뜻을 돕고 지켜 중간부분에 포함하고, 마지막으로 그 뜻을 마무리하여 끝을 맺는다. 이런 순서로 글을 쓰거나 이야기를 하면 글의 전체내용이 잘 어우러져 살아 움직이는듯하고, 읽는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일으켜 세워 권유하거나 징계(懲戒)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또 하나, ‘영화 아바타’

영화 아바타를 보면서 이야기의 출발점을 생각할 수 있었다.

당신을 봅니다(I see you)
꿈속을 거닐며(Walking through a dream)
당신을 봅니다(I see you)
어둠 속 나의 빛은 새 생명의 희망을 들이킵니다(My light in darkness breathing hope of new life)
이제 난 당신을 통해 살고 당신은 날 통해 삽니다(Now I live through you and you through me)
황홀경이죠(Enchanting)
이 꿈이 끝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도 합니다(I pray in my heart that this dream never ends)
당신의 눈을 통해 나를 봅니다(I see me through your eyes)
이 삶을 통해 살며 높이 날죠(Living through life flying high)
당신의 삶은 천국으로 가는 길을 밝혀주죠(Your life shines the way into paradise)
(이하 생략)

나비족들이 사용하는 말이다. 영화 <아바타>의 배경음악으로 리오나 루이스가 노래했다.

단순하게 직역하면 “나는 당신을 봅니다”이다. 하지만 ‘본다’ 또는 ‘보인다’라는 행위를 통해 대상과 서로 영적(靈的)으로 교감하고 나누어 하나가 되어가는 중요한 과정이다.

자연과의 교감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겸손하게 받아들였던 나비족들의 이야기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삶과 흡사하게 닮았다.

또 다른 하나, ‘어느 젊은 농부의 시선’

매일 매일 마주하는 농부의 삶과 작물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울토마토를 눈에 보이는 대로 송이 혹은 전체 달려있는 존재로 본다. 하지만 강원 황성의 한 젊은 농부는 가까이 보고 갈라서 보고 위아래로 보고 맛으로 보고 담아서 보기도 한다.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느낌이 오면 카메라로 앵글을 잡아 그 시점의 느낌과 생각을 같이 저장한다.

이렇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방울토마토를 보게 되면 그간에 없던 이야기들이 눈에 보이고 생각나게 된다. 그 농부의 헤아림은 마침내 ‘행복한 방울이’이야기로 진화하게 되는 것이다.

한 송이에 여러 개의 화방이 달리고 열매가 맺히지만, 한꺼번에 동시에 익어가는 것은 아닐 터….

마지막에 파란 방울이가 하나 남으면 그 곁에 잘 익은 방울이 한두 친구를 남겨두고 수확을 한다. 혼자 남게 될 방울이가 외로워 질까봐 안쓰러워서다. 농부의 헤아림은 그렇게 사물의 속내까지 유추해내고 미루어 짐작하는 것이다. 행복한 방울이는 외로우면 안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사물을 들여다보는 것.
사물을 본다는 것.

농부들의 삶을 한층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행위가 된다.
그 행위를 통해서 독특한 자기만의 이야기가 나오고, 다른 사람들과 구분이 되는 설득력 있는 이야기구조(서사)를 갖게 되는 것이다.

상품을 바라보는 것.
시장을 바라보고 소비자를 바라보는 내 시선은?
혹 고정되어있지 않은지 살펴보세요.

만약 대상을 바라보는데 한 가지 방법을 알고 있다면, 기꺼이 다른 시선으로 쳐다보도록 하세요. 저는 기본적으로 5가지 이상의 시선으로 보려고 노력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 멀고 가까움, 만져지는 질감,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작물이나 사물의 속 들여다보기 등등 이죠.

아주 다른 세상이 열릴 가능성이 커집니다.
아주 다른 농업이 열릴 희망이 보이게 됩니다.

남들과 다른 사물대하기.
이야기농부의 기본 행동지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