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병권 이야기농업연구소 소장

나는 불과 6개월 전 자궁암으로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못난 사람이다.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요즘. 5년 동안의 아내의 고생이 오버랩 되면서 여전히 마음 한 켠은 ‘질병’과 ‘현대의학’이라고 하는 것, 한의학이라 하는 것에 대하여 또는 그 중간에서 새로운 영역인 것처럼 고가의 진료비로 포장된 어떤 시스템에 대해 희망을 걸었다는 한없는 자괴감으로 무겁다.

때로는 견디기 어려운 분노가 일고 그 거대한 ‘전문영역(?)이라는 벽’과 ‘실낱같은 희망’ 사이에서 수 없이 번뇌하면서도 속절없이 밀리고 따라야했던 그 순간들…. 지금도 많이 아프다. 지금도 나는 이렇게 속이 아픈데, 떠난 이는 어떠했을까?

그런데도 여전히 아내가 암이 걸린 이유를 알 수가 없다. 21세기에 내 아내가 걸린 병의 원인을 “무슨 한이 그렇게 쌓이셨어요?”, “스트레스가 심하셨군요.”, “왜 조기검진을 안하셨어요?” 정도가 현대의학체계로부터 들은 진단이고 결과다. 그러다가 아내는 세상을 떠났다.

내가 지금까지 질병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인식의 기본베이스는 ‘세균’과 ‘바이러스’다. 모든 병이 다 이 두 가지로부터 출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세상을 인식하게 된 나이부터 시작해서 오늘날까지 수십 년간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은 영역이다. 병원에서도, 약국에서도, 책에서도, 영화에서도 하여튼 모든 곳에서….

우리나라는 항생제를 최고 사용량으로, 아무 때나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나라이고 모든 병을 바이러스적 관점으로 쳐다보고 진단하고 처방한다. 그러다가 온갖 현대적인 장비와 의학기술로 진단했는데도 병의 원인을 알 수가 없으면 보통 이렇게 이야기한다.

“원인을 알 수가 없네요, 아마도 신경성으로 인한 통증이 아닐까 싶네요”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성’, ‘스트레스’를 가장 손쉽게 이야기한다. 이건 뭐 양쪽(의사나 환자) 다 확인할 길이 없다.
“사람마다 다 성질이 달라서 일률적으로 이야기하기 어려워요”
“일단 더 경과를 두고 봅시다”

총론으로 보면 맞는 말이지만 각론에서는 애매해진다. 환자는 그 각론, 그 원인을 알고 싶은데 말이다. 환자는 아파서 죽겠는데 말이다. 이게 내가 사는 세계였다. 이게 내가 알고 있는 지금까지의 ‘질병과 인간의 삶과 죽음’이었다.

새로운 세계를 만나다. 한권의 책을 만나다.

▲ 훌다클락의「병을 넘어서」

담양농업기술센터 스토리텔링 프로젝트로 지금 3가지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그중 허브롤 중심으로 움직이는 ‘훌다영농조합’ 이야기가 있다. 질병의 원인은 ‘세균’과 ‘바이러스’가 아닌 ‘기생충’과 ‘독소(오염물질)’라고 주장하는 훌다클락 박사의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소재로 스토리텔링 작업 중이다. 여기서 ‘기생충’이라함은 유년시절 우리나라 사람들 인식 속에 박혀있는 ‘대변봉투의 추억’을 넘어선다.

회충, 촌충, 디스토마, 편충 등 몇 가지에 국한된 인식의 틀을 확고하게 깨부수는 이야기다. 이 세상에는 수백 수천가지의 기생충이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 몸속에서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우리 몸에 있지 말아야 할 것’들이다. 이것들이 독소(오염물질)와 더불어 모든 병의 원인이라고 보는 것이다. 당뇨병의 원인은 ‘췌장흡충’이고 암의 원인은 ‘장흡충’이다. 그리고 외부불청객인 그 기생충들이 그 곳에 있을 수 있도록 만드는 건 오염물질이다.

이런 관점 재미있지 않나요? 지금 낮에 있다고 밤을 부정하는 사람들에게는 어색하겠지만, 나는 비로소 나이 50줄을 넘어 세상을 보는 시선이 균형을 잡았다고 생각한다. 첫 느낌은 ‘오! 서프라이즈’였다. 그 기분을 기조로 해서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증상(症狀)’을 없애는 것은 병의 ‘결과’를 없앤 ‘치료(治療, Treatment)’일뿐 ‘치유’가 아니다. ‘치유(治癒, Healing, Cure)’는 병의 ‘원인’을 제거했을 때만 붙일 수 있는 이름이다. 세상의 모든 사물과 현상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끊임없이 아픈 두통을 위해 아스피린을 먹여 잠시 가라앉혔다고 치료 잘한다고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낮과 밤이 공존하면서 순환하듯 사람이라는 존재는 몸과 마음(정신, 영혼)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이 둘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둘이면서 하나인 관계로, 혹은 상호독립적이면서 상호의존적인 관계로 서로의 대칭점에 자리 잡는다.

영화「연가시」

▲ 영화「연가시」포스터

기생충 자료를 공부하다 보니 작년에 개봉한 김명민 주연의 영화「연가시」가 눈에 띈다. 무심코 지나쳐버린 영화다. 저게 무슨 뜻이지? 하고 말았던…. 영화「연가시」를 찾아서 봤다. 나는 모든 병의 원인을 세균과 바이러스, 항생제와 수술, 제거와 절단으로 인식했던 예전보다 훨씬 더 여유로운 심정으로 그 아주 흥미롭게 그 영화를 봤다.

영화「연가시」에서는 연가시가 사람 몸에 기생하며 극심한 갈증을 유발하고 물속에 뛰어들게 해 익사를 유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연가시가 사람의 뇌를 조종해 물가로 유인한 사례는 없으나, 흔치 않게 사람에게 기생한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정확한 감염경로가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학계에서는 연가시가 사람의 피부 층을 뚫고 직접 침입할 가능성은 희박하고 연가시에 감염된 물고기 등을 섭취한 경우로 추정하고 있다.

연가시에 대한 다음 이야기는 섬짓하다. 훌다영농조합법인 최종섭대표가 찍은 사진과 글이다.

▲ 연가시(사진=최종섭)

▲ 연가시(사진=최종섭)

사마귀의 몸속에서 기생하는 연가시라는 선충류의 기생충입니다. 길이가 30cm나 되는군요. 이놈이 사마귀의 배를 뚫고 나오는 바람에 사마귀는 고통스럽게 죽었습니다. 연가시를 집어서 물속에 놓아주자 정말 ‘물 만난 고기’처럼 활발하게 움직이더군요. 연가시는 물을 좋아해서 자신의 숙주(사마귀, 메뚜기, 귀뚜라미)의 뇌를 조종하여 숙주가 물속으로 뛰어들어 자살하게 만든다는 것으로 유명해진 녀석입니다.

고양이를 보고 달려드는 쥐를 잡아서 해부를 해봤더니 쥐의 머리에 기생충이 있었다고 합니다. 쥐의 머리에 있던 기생충은 고양이를 숙주로 하는 고양이회충이었습니다. 즉 고양이에게 들어가야만 하는 기생충이 쥐를 조종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결국 고양이회충은 쥐가 고양이에게 달려들게 해서 자신의 숙주에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의식의 힘이 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들을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기생충이 사람의 몸속에서 일으키는 무수한 변화들 속에는 사람이 쉽게 이해하지 못할 일들도 많습니다.

사람의 의식, 의지 그리고 감정은 기생충과 무관할까요?
우울증, 조울증 그리고 이어지는 급작스런 자살이 기생충과 무관할까요?
우리가 원인을 알지 못하는 무수한 많은 질병들은 기생충과 무관할까요?
그러고 보니 욕실이나 변기 등 물이 있는 곳에서 자주 보았던 귀뚜라미들이 생각이 난다. 아니 저 녀석들은 왜 저기 빠져 죽은 거지? 의문을 품었던 적이 많지 않았나요?

▲ 대자연과 호두를 비롯한 허브식물, 만물의 고유한 주파수

현대의학이 질병에 접근하는 방식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게 하고 상상하게 만든 훌다클락 박사는 병의 원인을 이야기했고, 그 치유법 또한 이야기한다. 대자연과 허브와 만물의 주파수다. 덕분에 질병에 관해 이해되지 않던 어떤 영역들이 상상과 실제적인 의미로 내게 다가서는 느낌이다. 나쁘지 않다.

그가 남긴 이야기 한 구절을 끝으로 글 맺음한다.

허브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선물이다.
그러나 이대로 간다면
우리의 숲이 파괴되는 것처럼
허브도 점점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저는 정원에 허브를 기르고
보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희망합니다.

-훌다클락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