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기자 마송국화 먹는식물원 교육농장 대표

3월 중순이 넘으니 중부지역인 김포도 땅이 녹았다. 해토가 되면 식물원에서 맨 처음 할 일은 식물이 사는 집과 사람이 다니는 길을 구별하는 두둑정리다.

식물원의 두둑은 일반 재배포처럼 길게 쭉 뻗어있지 않고 구불구불 돌아다니는 재미와 수줍고 작은 놈을 찾아내 예뻐할 줄 아는 사람을 위해 조각조각 구름처럼 만들어 놨다.

식물의 집은 여느 집 전원주택에 심겨진 철쭉의 집처럼 큰 돌덩이를 안고 있지 않고 손바닥만한 크기의 낮은 나무울타리로 그 경계를 삼고 있는데, 이 나무울타리가 해토가 되면서 이빨 빠지듯이 다 빠져 나와 버렸다. 땅이 제 살이 아니라고 다 밀어내버리는 모양이다.

식물심기는 ‘때’라는 것이 있어서 울타리작업을 하면서 병행해야 한다. 보름 전 파종한 밀 모종이 때를 기다리고 있어서 식물원 입구와 가까우면서도 양지바른 곳의 집을 선택해 옮겨심기를 했다.

밀을 심을 때는 땅과 잘 밀착될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한다. 보통은 물로 식물과 땅의 밀착을 돕지만 관수를 하기 어려울 때는 발로 꼭꼭 밟아준다. 그렇게 해야 땅과 식물은 서로의 결합을 통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성장을 하게 된다. 겨울을 난 보리나 밀을 밟아주는 것도 땅이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식물과의 뿌리 결합이 느슨해져 식물이 영양분을 흡수하지 못해 고사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보리와 밀을 땅에 안착시켜 생명을 이어주는 것이다.

마송국화도 농부를 꿈꿀 ‘때’가 있었다. 대학 시절 선배농부와 함께 대한민국의 먹거리를 생산하고 싶어 안달이 나던 그 젊은 날이 그때였다.

농사는 생산자체가 먹거리 재료가 될 뿐만 아니라 공장이나 동물에서 나오는 유독가스를 정화하고 토양과 물도 새롭게 만들며 도시민의 우울증을 경감시키고 가족애를 꽃 피울 수 있는 휴양지도 되고 더더욱 국가를 존립하게 하는 근본이라 생각했기에 1타 5~6피쯤 하는 농사보다 더 멋진 직업이 어디 있었겠는가?

학교를 마치고 그 꿈을 김포로 옮겨심기 시작했다. 시금치농사를 시작으로 포도농사, 애호박농사, 꽃꽂이용 국화하우스 재배까지 이 땅에 활착하고자 무던히도 애를 썼다.

웬일인지 그러면 그럴수록 이 놈의 땅은 우리를 자꾸 뱉어 내동댕이 쳐버렸다. 우리만이 아니라 긴긴 세월 젊음을 바쳤던 선배농부들 또한 활착하지 못한 채 매번 이 땅에서 밀려나왔다. 밀농사는 수입밀가루에 밀렸고, 국화차는 커피에 밀렸다. 대한민국의 땅은 농부가 제 살이 아니라고 밀어내 버리는 모양이다.

쌀을 뺀 식량자급률이 3%라고 한다. 3%를 가지고 국내산 농산물은 경쟁을 해야 한단다. 농부입장에서는 농부들 간 서로 죽이는 경쟁을 하지 않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것이 친환경농산물 학교급식이다.

임산부가 입덧을 하는 이유는 말 못하는 태아가 좋지 않은 유·해독의 흡수를 막고자 내린 조치라고 한다. 임신하면 음식과 냄새에 예민해지는 것이 같은 이유다. 튼튼한 세포를 만들고 커가야 하는 아이들 또한 태아의 상태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덜 여문 몸을 값싸고 배불린 음식으로 채울 것이 아니라 좋은 음식을 부족하다 싶게 먹여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석기시대인 우리 몸이 제 위치에서 제 역할을 수행한단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학교의 밥상차림은 아주 중요하다. 급식은 엄마가 차리는 밥상과 같아야 한다. 엄마는 못 먹어도 아이에게 먹이는 그런 밥상. 이것이 친환경학교급식을 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다.

요즘 친환경급식이 이 빠진 울타리 신세인 것 같다. 자꾸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활착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밀, 보리처럼….

이 빠진 울타리는 망치로 쳐서 제 집을 만들어주고 밀, 보리는 꼭꼭 밟아 풍성한 수확을 봐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