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관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운동 네트워크 대표

‘미국쌀 95% 기찬진미쌀, 중국산 95% 청아미, 호주산 95% 농부의 명작, 미소뜰, 농부사랑, 자연맛쌀, 천지인’. 이 모두 국산 포장지에 담겨 팔리는 수입쌀들의 이름이다.

수입쌀이 국산 포장지를 사용해 팔아도 합법이라고 한다. 수입쌀에 국산쌀 5%만 섞어도 국산 포장지로 포대갈이가 가능하게 됐다. 이러한 양곡관리법의 허점을 이용해 수입쌀 판매가 급증했다. 그에 따라 쌀값은 추락했고 소비자들은 속고 있다. 농민들은 ‘정부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라며 탄식하고 있다.

2011년 정부는 묵은쌀을 햅쌀과 섞어서 파는 혼합미 정책을 앞장서서 시행했다. 밥쌀용 수입쌀은 2010년에 2만톤을 팔기가 어려웠지만, 2012년에는 14만톤을 훌쩍 넘겨 판매됐다. 년산이 다른 쌀을 혼합할 경우, 혼합비율을 구분해서 표시한다고 하더라도 육안으로는 구분이 불가능하다.

그동안 정부는 수입쌀 판매부진으로 인한 창고 보관료, 할인 판매 손실 등을 해소하기 위해 농산물가격안정기금을 사용해왔다. 최근에는 미국산 쌀이 나오기가 무섭게 매진되는 상황이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밥쌀용 수입쌀 원산지 표시 위반 물량’ 자료에 의하면 정부가 혼합미를 권장한 이후 원산지 표시위반이 급증했다. 수입산을 표시하지 않거나 국내산으로 원산지를 속여서 표시한 경우가 식당을 중심으로 2008년 941톤에서 2011년 1,687톤, 2012년 3,438톤으로 크게 증가했다.

결국 정부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혼합미를 통해 유통 상인들을 자극하고 원산지 표시의 빗장을 열어놓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한편 최근 3년 연속으로 쌀자급률이 80%대로 떨어졌다. 1975년 통일벼로 100% 쌀자급을 이룬 이후 4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최근 3년간 관세청 자료를 보면 수입쌀이 의무도입량을 훨씬 초과해서 들어왔지만 국민들은 쌀 부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수입쌀 혼합미로 인해 쌀값이 오히려 떨어지니 쌀이 남는 줄 알고 있다.

2011년 정부는 쌀자급률 목표치를 90%에서 98%로 상향 조정했지만, 정작 현실은 3년 연속 80%대로 추락했다. 올해 초 농촌경제연구원은 2014년 농업전망을 통해 올해 쌀자급률을 91%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는 300평당 평균 단수 506kg가 근거다로 최근 3년간 보다 풍년이 들었을 때 가능한 수치다.

지난해에도 정부는 쌀 자급률 91%를 예상했지만 결국 쌀 자급률은 89%에 머물렀다. 최근 정부는 쌀 경지면적을 올해 초 농경연이 예상한 83만1천ha에서 1만1천ha 감소한 82만ha로 발표했다.

2015년 쌀 자급률에 빨간불이 켜져 있다. 도대체 이 쌀 부족을 누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지난 3년처럼 몰래 수입쌀을 더 들여오고 혼합쌀로 섞어서 국민을 속일 것인가. 실로 심각한 상황이다.

게다가 정부는 2011년 설정한 98% 쌀자급률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는 농지 확보에 이미 실패했는데, 오히려 며칠 전 농지규제 완화를 발표했다. 2011년에는 정부는 쌀이 남는다며 논에 콩이나 옥수수 등 다른 작물을 심으면 직불금을 주기도 했다.

올해는 쌀의 관세화를 통한 전면개방을 논의하는 해다. 수입쌀이 국내산으로 둔갑돼 수입산과 국내산을 구별할 수도 없는 조건에서 어떻게 국민들이 우리 쌀을 지킬 수 있을까. 정부는 쌀을 개방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다. 관세화를 논의할 자격조차 의심스럽다. 일부 쌀개방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추가개방 없는 현상 유지가 마치 우리가 가능하지 않은 억지 주장을 하는 것처럼 이야기 하고 있다.

쌀은 민족의 생명줄이다. 쌀 정책을 한번 잘못 펴면 되돌릴 수 없는 피해가 온다. WTO는 성경이 아니다. WTO는 모든 것을 협상으로 결정한다. WTO는 주체적인 입장에서 해석하고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