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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진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부는 또다시 국민을 속였다. 쌀수입개방을 해도 밥쌀 수입은 안 할 것이라고 약속했건만 그 약속을 애초에 지킬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밥쌀 수입에 더해서 미국은 TPP에 가입하고 싶으면 쌀 관세를 낮추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
 
그런데도 국민은 별 관심이 없다. 오늘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 쌀문제를 이야기 하고 싶다. 80년대 어느 순간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시작한 다양한 프랜차이즈점들의 공통점을 하나 찾으라면 바로 밀과 고기가 주원료인 것들이라는 점이다. 그것들은 우리가 그전에는 거의 먹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들어온 지 30년.우리 밥상은 과연 어떻게 변했을까? 일주일 21끼가 어느새 15끼 이하로 줄어든 집이 태반이다. 특히 도시는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그 15끼마저도 밥과 반찬으로 이루어진 밥상보다는 간편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이런 간편식이 바로 밀과 고기를 주원료로 하는 것들이다(2014년 11월 3일 식량닷컴 29호 필자의 칼럼을 참조하시라).

상황이 이런 마당에 우리들을 돌아보자. 우리들 중에도 특히 친환경유기농 직거래단체에 소속된 사람들이 농업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이런 단체들은 하나같이 국내 농업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대체로 농민들과 함께 정부에 대항해 싸우는 사람들도 많고 다른 사람들보다 수입농산물보다는 우리 농산물로 먹으려는 노력 또한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다 되는 것일까?

사실 이런 사람들은 아주 미묘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 자부심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밀을 대하는 태도이다. 그들은 시중에서 파는 다양한 밀가루가 주원료인 먹을거리들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래서 그들은 수입밀로 만든 시중의 먹을거리가 아니라 자신들이 속한 단체에서 판매하는 우리밀로 만든 먹을거리를 선택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빵, 햄버거, 피자, 라면, 국수를 비롯해서 과자에 이르기까지 우리밀로 만든 것을 먹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우리 땅에서 재배된 것을 먹는다는 사실 하나만 보면 이것은 참으로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많은 차이는 아니라 하더라도 시중의 먹을거리보다는 값이 비싼데도 불구하고 기꺼이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20년 이상 이 사람들과 함께 활동하고 만나면서 가장 자주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이것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아이들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주기 위해 노력했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항상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들도 유사하다. 그렇게 키운 아이들이 유치원을 가고 학교를 가고 친구를 사귀기 시작하면서 바뀌기 시작한 먹을거리에 대한 우려가 그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공들여 먹였는데 밖을 나가는 순간 그런 수고는 사라지고 아이들이 아무것이나 먹게 되는 것에 대한 우려말이다. 아마도 이런 우려가 오늘날 친환경급식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면 안심일까?

무항생제축산에 유정란과 우리밀로 만든 돈가스로 키운 아이가 밖에서 시중 돈가스를 먹는 것에 속상해한다. 우리밀 원료에 첨가물 없는 빵, 우리밀 원료에 유기농 채소 등으로 만든 피자, 그들의 노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게 키운 아이가 밖에서 아무 것이나 먹는다는 사실은 충분히 마음 아플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유치원이나 학교나 친구들 잘못이 아니다.
 
우리가 집에서 이것은 유기농이고 우리밀이니까 괜찮다고 먹여온 그 먹을거리에 길들어진 아이들에게는 그것은 유기농이고 우리밀이었던 것이 아니라 그냥 빵이고 피자고 돈가스였을 뿐이다. 아이들이 밖에 나
가서 아무거나(?) 먹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우리가 먹는 것은 안전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아이들을 그 맛에 길들여지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원망을 하려면 우리 스스로를 원망해야 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1인당 밥쌀 소비가 30년만에 130kg에서 65kg으로 딱 절반으로 줄었다. 밥과 반찬으로 이루어진 밥상에 가족이 모여 함께 하는 횟수는 아이가 커가면서 점점 줄어 들기만 한다.
 
현실이 이런 마당에 끼니를 밀가루 음식으로 대신하면서 그것이 수입밀이면 안되고 우리밀이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은 정말 우리 농업을 걱정하고 함께하는 태도로 충분한 것일까? 이 땅에 적합한 벼농사와 잡곡과 채소의 밭농사가 망해가는 마당에, 10년 후에도 농민들이 여전히 농사가 가능할지 불투명한 마당에, 우리 밥상에 오르는 것이 수입밀이거나 우리밀이거나, 솔직히 그게 뭔 상관이랴. 밥을 안먹는 것은 어차피 똑같은 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