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호 PDF 파일 지면 2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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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건국대 경영경제학부 겸임교수

국민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된 지 3년이 지났다. 그런데 정부를 제외하고 그 어느 누구도 한미FTA 협정문 전문을 볼 수 없다. 심지어 국회도 협정문 전문을 볼 수 없다.

정부가 협정문을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간다면 이와 같은 속칭 ‘깜깜이’ 통상협상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도 그대로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는 현행 통상절차법 때문이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은 통상절차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아마도 통상협상의 시작단계에서부터 통상절차법이 온전히 적용되는 것은 TPP가 최초의 사례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있었던 수많은 통상협상은 정부주도로 일방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심지어 비교적 최근에 맺는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중국, 베트남 등과의 자유무역협정(FTA)도 그 시작단계에서부터 통상절차법의 적용을 받은 것은 아니다. 통상절차법(통상조약의 체결절차 및 이행에 관한 법률)은 지난 2012년에 제정되었다.
 
정부의 일방적인 주도로 이루어지는 통상협상에 대해 국회의 견제 및 감시 기능을 강화하고, 이해당사자 및 국민의 의견수렴을 강화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 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여당이 수도 없이 몽니를 부리고 무수히 칼질을 하여 결국에는 누더기가 된 채 겨우 통과되었다.

이 때문에 현행 통상절차법은 통상협상에서 국회의 감시와 견제가 실효성이 거의 없도록 만들고 있다. 법 제정의 취지와 목적이 실종되어 버린 것이다. 통상절차법에 의하면 정부가 통상협상 개시 전, 협상 중, 서명 후 각각 협상에 관한 사항을 국회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 법 제4조(정보의 공개)에서 정부가 통상협상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수 있는 조항이 삽입되어 있으며, 해당 조항 자체가 일방적으로 정부에 유리하도록 되어 있다.
 
즉 정부가 자의적 판단에 따라 통상협상에 관한 사항을 국회에 보고하지 않아도 되게끔 만들어 놓은 것이다. 지금과 같은 통상절차법을 그대로 둔다면 TPP역시 정부 주도의 일방적인 밀실협상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부가 자의적 판단에 따라 TPP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경우 국회의 견제 및 감시 기능도 무력화되고, 국민의 의견수렴 역시 형식적인 요식행위 절차로 일방통행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입개방의 완결판과 같은 TPP 가입이 또 다시 정부의 일방통행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무엇보다 통상절차법을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통상 절차법을 개정하여 문제가 되는 조항을 삭제하고, 법 제정의 취지와 목적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

협상개시 전, 협상 중, 정부간 서명 후 등 통상협상의 절차별로 국회의 견제 및 감시가 실효성 있게 이루어질 수 있는 조항을 보완해야 한다. 아울러 요식행위로 전락한 국민의견 수렴 절차 역시 실질적인 의견수렴 기능을 갖도록 보완해야 한다. TPP를 반대하는, TPP 가입을 막는 우리의 노력은 통상절차법 개정 운동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만약 통상절차법이 개정되기 전에 정부가 TPP가입을 공식 선언할 경우 현행 통상절차법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정부의 일방통행을 막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TPP 가입을 위한 협상을 벌이기 위해서는 현행 통상절차법에 따라 국내 각 분야에 미치는 영향평가를 반드시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영향평가를 위해서는 TPP 협상에서 타결된 협정문에 따라 경제적 타당성 및 피해영향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현재 진행되고 있는 TPP 협상은 비밀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그 어떤 것도 공개된 것이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TPP 가입을 위한 국내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정보 공개와 피해영향 평가의 실효성 등의 여부를 놓고 대립이 불가피할 것이다. TPP 가입을 막기 위한 노력은 한편으로는 통상절차법 개정운동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정부의 일방통행을 최대한 막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 메르스가모든 이슈를 삼켜버렸지만 통상절차법 개정에 우
리가 관심을 갖고 준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