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호 PDF 파일 지면 7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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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숙 시인,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벌판을 쏘아 다니는 일이 생겼다. 지역을 사랑하는 몇몇 사람이 둘레길을 만들기로 하고 삼년 여 활동을 했는데 필자도 함께 하게 되었다. 지역과 지역사회 그리고 사람들의 관계속에서 서로가 필요, 충분한 연대적 소통의 폭을 넓혀가고자 하는 바램속에서 비롯 된일이다. 개인적으로 신나는 일이다.
 
그동안 서울 생활 하면서 지역의 구석구석을 누비지 못해 좀이 쑤셨는데 너른들을 바라보며 쏘다니는 것이 또 다른 힐링이 되고 있다. 돌아다니면 눈에 들어오는 것이 벌써 고개를 숙이고 노랗게 속살을 찌워가는 벼들이다. 모내기를 해서 푸른 들판에 바람이라도 일렁일라 치면 들멀미로 몸이 휘청이던 때가 엊그제 인데 벌써 나락이 고개를 숙이는 가을이란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처서가 지나갔다.

지난 시절 쌀자급을 위해 모두가 바지가랑이를 걷어 부치고 모를 내던 시절이 있었다. 박정희 전대통령이 가랑이를 걷고 논에 들어가 모를 내던 흑백사진이 기억난다. 그리곤 논두렁에 앉아 촌로들과 막걸리를 나누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어린 날의 그 기억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훌륭한 지도자로 여기게끔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난한 소작농의 집안에선 밥먹는 일을 해결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희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초등학교 졸업할 때 장래희망을 말하는 시간에 박정희 대통령 같은 정치가가 되겠노라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박정희가 독재자란 것과 권력욕의 화신이 란 사실을 알고 스스로 내자신을 부끄러워해야 하는 자괴감으로 괴로워해야 했다. 어쨌든 박정희정권의 최대 정치적목표는 쌀 자급이었다. 정권의 안정이 쌀 자급에 달렸다고 했다. 간척지를 확장했다. 그리곤 거기에 농민들을 집단 이주시키고 농사를 짓게 했다.

1961년 섬진강 칠보댐 건설과 계화도 간척사업이 대표적이다. 또 바닷물이 들어오는 하천에 둑을 막아 담수호를 만들어 농업용수를 확보하여 산간지에도 쌀농사를 짓게 했다. 그게 평택, 아산, 화성지역이다. 1974년 남양만 방조제, 아산만 방조제, 1979년 삽교천 방조제는 아시아개발은행 자금으로 이루어졌다.
 
고구마나 심어야 했던 산간구릉지와 바닷물이 들어오던 넓은 간석지가 옥답으로 변했다. 그러나 박정희 자신은 궁정동 안가에서 삽교호 방조제준공 축하 술자리에서 수하의 총에 쓰러지고 말았다. 자신이 목표했던 연간4000석 쌀 생산은 그것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박정희정권의 쌀자급 정책은 농지확보만이 아니었다. 일 년에 몇 백만 섬을 먹어치운다는 쥐잡기운동은 쥐약을 나누어주고 일시에 쥐를 잡는 날 약을 놓아 쥐를 잡았다. 그러나 죽으라는 쥐는 용케도 살아남고 누렁이가 쓰러지거나 닭이 뻣뻣하게 발견되기도 했다. 아이들은 등교할 때 신발주머니에 쥐꼬리를 넣어 학교로 가져가 선생님께 보여드리기도 했다. 농촌지역 전봇대에는 소주밀식이라고 한글로 적혀있어 저것이 무슨 말인지에 대해 아이들끼리 해석이 분분 했었다.
 
당시 못줄은 간격이 넓고 볏묘를 많이 잡아 (15묘)심는 것이 관행이었다. 농업학자들의 조언을 받아 볏묘 수는 절반정도로 줄이고 간격은 촘촘히 하라는 뜻이다. 비료공업의 성장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또 하나는 건답직파다. 마른 논에는 볍씨를 바로 뿌려(직파)지으라는 것이다.
 
그런 구호는 농촌사회 곳곳에 붙어있었다. 그뿐인가. 혼식과 분식을 장려하여 밀가루 수입이 늘어나고 학교에선 혼식도시락 검사를 받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부잣집이던 내 짝은 늘흰밥에 검은 콩 몇알을 올려놓아 검사를 피하곤 했다. 커다란 밥사발이 스텐레스 공기로 바뀐 것도 이 시절이다. 보리밥이 영양가가 높다며 영양학자들은 앞을 다투어 선전을 해댔다. ▶다음 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