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호 PDF 파일 지면 7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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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숙 시인,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백남기 농민이 아직도 병원에서 사경을 헤메고 있다. 가족과 지인들 그리고 그가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경위야 어찌 됐건 이쯤 되면,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병원에 방문해 가족들을 위로라도 해야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일 것이다.
 
그렇게 보면 정부는, 아니 국가는 사람의 얼굴을 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 그른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듯하다. 백남기 농민이 외친 것은 무엇인가. 간단하다. 농사를 짓겠다. 그러니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해 달라. 아주 소박 하다. 더 이상 요구할 것도 요구한 것도 없다. 그런 그를 국가권력은 물대포로 쏘아 꺼꾸러트렸다.
 
옛 선인들은 말했다. 국민이 나라의 근본이라고. 그 근본을 아끼지 않으면 국가는 없는 것이라고. 이 말은 현대라고해서 달라질 것이 없다. 민주주의는 국가권력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국가의 최고 책임자가 저렇게 코를 불며 국민을 무릎 꿇리겠다고 이를 갈고 있다.

농사를 짓겠다는 외침을 물대포로 무릎을 꺽고, 한 발 더 나가 이젠 우량 농지를 풀어 기업에게 싼값으로 공급 하겠다고 나섰다. 아예 물대포 앞에 설수도 없도록 근거지를 견벽청야(堅壁淸野)해 버리겠다는 것이다. 이젠 농사를 짓지 말라는 것이다. 농사보다는 기업들이 공장 짓고 집도 짓고 하는 편이 농사보다 경제를 활성화하는데 득이 된다는 것이다.

사실 그런 논리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일부농민들의 민원이라고 얘기하지만 사실은 부재지주들의 요구였다. 부재지주들은 대부분 도시근교 개발이 용이한 지역에 땅을 선점하고 농민들에게 농지를 대여해왔다. 부재지주들은 누구인가. 이 사회 지도급 정, 관계 인사들이다. 2008년 직불금 사태 당시 자료를 보면 고위공무원, 정치가, 기업가들이 가지고 있는 농지는 불법임에도 상당수의 농지가 위장과 탈법, 위법으로 소유한 상태임이 밝혀졌다.
 
이후 농지에 주어지는 직불금 마저 농촌으로 가는 몫이 아니라 도시로 가는 몫이 되고 말았다. 사정이 그러하니 농식품부장관이 총대를 메고 나서게 된 것이다. 전임정부 장관들도 이문제를 수시로 끄집어내어 여론을 만들어 보려했지만 농업계의 반발로 무산 되곤 했다. 농지를 가진 유력자들은 부동산투기로 한 몫 하고자 법이 개정되길 학수고대한다. 정부에 압력을 넣기도 하고 국회에 로비도 한다.
 
그러나 여론이 무섭다. 그래서 이번엔 농식품부장관에게 총대를 메도록 한 것이다. 교활한 정부다. 쌀이 남아돈다는 표면적 이유를 들어 차도살인(借刀殺人)하고 있다. 핑계가 쌀생산을 조절하고 기업에게 값싼 토지를 제공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그 이익을 누가 보겠는가. 그것도 자투리땅 3ha라고 한다. 9천평이 자투리땅이란 말인가. 반듯한 농지 한 덩어리가 1500평 0.5ha다. 그런 것이 여섯 덩어리나 되는데 자투리라는 말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9천평이면 300명이 넘는 사람의 명줄을 일 년 동안 이어주는 쌀이 만들어지는 면적이다. 그런땅을 전체 우량농지의 10%인 10만ha를 풀어 버리겠다는 것이다. 경기도의 쌀 재배면적이 작년기준 8만여ha이다. 경기도 재배면적보다 많은 농지다. 농경연 보고에 의하면 쌀 생산량으로 약 38만 톤이 줄어들 전망이라고 한다.

어떤 자들은 농지규제가 합리적이지 않다고 침을 튀긴다. 이번기회에 규제를 풀고 합리화 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과연 그런가. 속내는 그렇다 치고 농지규제를 풀면 그것은 가진자들의 이기심을 충족시키고 더욱 가지려는 투기심만 조장할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농지의 절반이 농민들의 손을 떠난지 오래됐다. 경자유전의 헌법정신을 하위법률로 유린했다. 농지임대차보호법은 사실상 농민들의 손에서 농지를 떼어내도록 고려한 법률이다. 그것이 현실이기에 합리적이라고 우겼다. 우량농지가 타목적으로 개발되면 그 면적만큼 다른 농지를 우량농지로 확보한다는 법도 2008년에 슬그머니 없애 버렸다. 그러는 동안 농민들은 자신의 농토보다는 빌려 쓰는 농지가 늘어났다. 임대료(소작료)는 오르고 그것을 봉창하기위해 농지를 놀릴수 없다. 쉴 수 없는 농지는 생산력이 떨어지니 화학적 고투입이 필요하고 여기서 생산된 농산물은 수입농산물과 충돌하면서 가격하락으로 이어진다.
 
농민은 농사를 지어 요행이나 천행을 바라며 농사를 짓는다. 작금의 우리농업현실이 이렇다. 농지규제를 합리화하려면 경자유전의 헌법정신을 살려내야 옳다. 농경연의 주장대로 32%의 식량자급률을 높이려 해도 172만ha가 필요하다. 그러나 작년기준 이미 170만ha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우리는 이미 농업을 포기한 국가라는게 명백해졌다. 농지가 없는 나라에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건가?

우리가 보전해야할 농지 면적이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먼 미래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가야할 땅에 그들의 의사가 반영될 여지를 남겨야 한다. 땅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서 캡슐 한 알로 인간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고 해도 먹을거리가 없으면 생명은 존속할 수가 없다.

박근혜 정권은 이번 농지규제 완화로 일부의 환영을 받을 진 몰라도 역사적으로 농사를 망치고 나라를 망친 정권으로 남을 것이다. 정권은 5년으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