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호 PDF 파일 지면 6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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逢草  이권수

1610년쯤의 얘기다! 오오다니(大谷甚吉)와 무라가와(村川市兵衛)를 태운 일본의 어선 한척이 독섬 부근에서 태풍을 만났다. 그 후 울릉도에서 며칠을 머문 그들은 그곳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을 발견하게 되고, 본국으로 돌아간 그들은 그 놀라운 발견에 대해 즉각 ‘도쿠가와막부’를 통한 중대한 계획을 논하기에 이른다.
 
1618년 드디어 도쿠가와막부(德川幕府)는 다니(大谷甚吉)라는 어부에게 죽도도해면허(竹島渡海免許)를 허가하게 된다. “섬에는 천년목 주목이 대나무처 럼 많이 자라고 있다! 또 어떤 곳에는 더 신기한 소나무가 무진장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그 첫 계 획은 우선 천년 목(주목)을 손에 집어넣는 일이었다.

그 까닭에 울릉도 지명이 졸지에 그들만의 암호(暗號) 인 죽도(竹島)가 됐을 것이다. 사실상 그들의 어업허가는 ‘도해면허’(渡海免許)가 아니라 울릉도의 주목(朱木) 을 잘라내기 위한 ‘도벌면허’(盜伐免許)였던 것이다. 울릉도의 겨울은 빛이 난다. 하얗다 못해 하늘빛이다.

그 온산천이 하얀 눈을 덮어쓴 채 계절은 지금 봄으로 가는 터널 속에 깊이 갇혀있음을 전달 하는데 눈 무게에 나뭇가지가 처지고 또 쳐지다 못해 결국 부러지고 또 그 나뭇가지 찢어지는 소리는 눈이 녹아 떨어지는 소리와 합쳐져 고요한 산속의 적막감을 깨는 소리로 연거푸 메아리치며 또한 그런 풍경의 겨울임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그런 일 정도에는 전혀 무관한 듯 당당한 몇몇의 나무가 있다. 그 나무가 바로 솔송(率松)과 주목(朱木)이며 이나무들은 마치 이계절을 즐기기라도 하듯 멋진 포즈의 당당한 자태일 뿐이다. 그래서 더 멋있어 보인다. 그런데 이 나무들이 이렇게 될 수 있는데는 나무의 재질이 워낙 탄력이 있고 강하여 그런 무게의 눈(雪) 쯤으론 어찌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솔송나무는 그 자태만큼이나 개체증식에 있어서 여타 다른 엽수들에 비해 매우까다로운 기질의 나 무이다. 약5년까지 키운 실생묘(實生 苗)가 겨우 젓가락 굵기만큼 밖에 되지 않으며 수고는 20Cm도 채 안될 정도이다. 이에 자생지 내 솔송의 존재와 그 귀함은 더욱 간절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일본인들이 울릉도의 이 솔송을 도벌(盜伐)해 간것은 단순히 우리 목재만을 가져간 것이 아니라 그 솔송이 자라온 그 수 백년간의 긴세월까지도 모조리 훔쳐간 것이 된다. 이 얼마나 가슴저리는 아쉬운 일인가?

겨울 울릉도엔 눈폭풍이 거세다. 또한 그눈들이 많은 나무들의 가지를 찢어놓아 우리의 가슴도 함께 찢 어지게 한다. 그러한 사태의 한편에서 아직도 끄떡없는 저놈의 솔송나무가 그나마 허황한 우리네 가슴을 달래주는 것 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