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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수 사람사는농원 대표

인터뷰 이영수 사람사는농원 대표(경북 영천)
이영수는 경북 영천시 임고면에서 2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농촌을 잘살게 하는 농촌지도자를 꿈꾸며 1994년 서울대 농대 농촌사회교육학과에 들어갔다. 당시 우루과이라운드 투쟁이 한창이라 농대에서는 학생운동이 활발했다.

농업문제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농대학생회활동도 하게 되고 서울농대 부학생회장도 맡게 되었다. 서울농대 학생회 활동으로 수배되어 1997년부터 조계사에서 수배해제 농성 투쟁을 했다. 공익요원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농촌사회교육학과 김성수 교수님, 최영찬 교수님의 권유로 대학원공부를 하려고 했다. 당시 전농에서 활동하던 선배가“공부는 대학원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농촌 현장, 농민 투쟁의 진원지인 전농에서 일하면서 하는 것이 진짜 공부가 아니겠냐”고 권했다.
 
공익근무 마지막 휴가를 2002년 30만 농민대항쟁 자봉단으로 활동하면서 농민들의 역동적인 광경을 보고 대학원보다는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실에서 일해 보기로 결심했다. 전농에 들어가자 마자 한칠레 FTA로 정국이 들끓어 연일 계속되는 농민시위로 유치원생들도 FTA를 알 정도였다. 수많은 농업 전문가와 박사들이 있음에도 농민들 편에서 제시한 이론적 근거가 없음을 개탄하면서 몇 날 밤을 세워 만든‘한칠레 FTA 반박자료’는 여당 의원들도 인용할 만큼 큰 호응을 얻었다.

또 이경해 열사가 자결한 멕시코 칸쿤 투쟁과 1000여명의 한국농민들이 참가한 홍콩투쟁 등 국제연대 업무를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다. 전농에서 일하는 동안 전농 경제사업단에서 일하던 집사람을 만나 결혼했다. 전농 선배들은 내가 중앙에 남아 전문 활동가로 일하기를 권했다. 그러나 실무자 정책전문가 보다는 농촌 현장의 경험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지금 생각해도 잘 한 선택이다. <김현곤 기자/자치와협동 조직국장>

삶의 기반, 복숭아 농사
처음 고향에 내려와서 농사짓겠다고 하니 아버님의 반대가 심했다. 아들이 끝가지 고집을 피우니 정 농사짓고 싶으면 안 보이는데 가서 농사지으라고까지 하셨다. 처음에는 얼굴도 안보려고 하셨다. 묵묵히 일만 했다. 그러던 중 아버님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어쩔 수 없이 농사일은 아들 몫으로 되었다. 아버지한테 인정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복숭아 농사에서 최고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전국 곳곳을 견학하며 농사기술을 배웠다.

영천 천혜의 조건이 복숭아 농사에는 최고의 적지였음에도 영천의 농민들이 농사기술은 신경을 많이 안 썼다. 내 자력으로 농사를 시작하고 선진농업 기술을 접목하면서 생산량과 품질이 향상되고 소득도 향상되었다. 아버지가 농사지으실 때 2,000만원 매출을 다음해에 4,000만원으로, 그 다음해는 7,000만원으로 매년 농사 기술이 발전하고 매출 수익이 늘어가는 모습을 보시고 아버지도 나를 믿어 주시고 인정해 주셨다. 아버지에게 인정받는 과정이 고향마을에 뿌리 내리는 과정이었다.

지역활동의 첫 걸음, 골프장 대책위 활동
고향에 내려올 당시 마을에는 골프장 공사계약이 추진 중이었다. 이미 마을 주민들에게 불리한 조건으로 공사 계약서가 작성되어 마지막 합의를 남겨 놓고 있는 상황이었다. 처음 고향에 내려와서 반대 투쟁에 개입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부담되어 지켜만 보던 중이었다. ‘골프장 투쟁은 잘해야 본전인데, 내려가자마자 기반도 없이 덤비지 않는 게 좋지 않겠냐’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었다.

어떡해 할까 고민하면서 지켜만 보고 있었다. 마을에서 최종 공사 계약서에 서명하는 과정에 동네 어르신들이 “네가 그래도 서울에서 공부한 수재이니 계약서 작성 과정에 참여하여 좀 봐 달라”고 부탁하셨다. 계약서 내용을 보니 마을 주민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건이 수두룩했다.

계약서 최종 서명에 제동을 걸었다. 마지막 계약서 서명에 결렬을 선언하고 인근 2개 마을이 골프장 마을 대책위를 만들었다. 골프장대책위를 운영하면서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1) 모든 정보는 투명하게 공개하고 소식지를 통해 마을 주민들에게 알린다. 2) 모든 결정은 회의를 통해 함께 내리고 함께 책임진다. 소식지가 나올때마다 200여 가구에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전달하고 설명했다.
 
어수선했던 마을 분위기가 점차 하나로 모아지고, 대책위 회의는 점차 권위를 가지게 되었다. 처음으로 마을에서 집회를 했는데, 누가 나오겠냐고 그랬지만 한 집 빠지지 않고 다 나와 그야말로 잔치가 되었다. 합의를 얼마 앞두고 전국적인 건설경기 불황으로 골프장 공사도 1년여 중단되었다, 골프장 측에서 처음 제시한 4억원 못 받으면, 영수보고 내 놓으라고 하자는 얘기도 들렸다. 그리고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면전에서는 그렇게 격려하고 칭찬하던 친구의 부모고, 집안 사람이란 것을 알았을때의 그 상실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정보와 소식은 투명하게 공개하고 회의를 통해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책임지려는 노력이 쌓여서 3년여의 골프장 반대 투쟁은 승리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4억 보상금과 불리한 계약 조건이 수두룩하던 계약서 내용을 완전히 바꾸어 16억의 보상금과 마을 주민들을 위한 안전 장치를 만들고 최종 타결을 했다. 주민총회를 개최하여 최종 타결을 보던 날은 모든 주민들이 나와 서로 격려하고 얼싸안고 축하하는 잔치날이 되었다.

‘맨날 싸움박질만 하는 국회의원보다 이 어려운 골프장 투쟁을 승리로 이끈 우리 동네 어르신들이 더 훌륭하다’는 나의 말에 마을회관은 박수 소리로 떠나갈 정도였다. 복숭아 농사에 이어 골프장 투쟁을 겪으면서 아버지는 나를 인정해 줬고, 경로당 출입을 일체 하지 않으셨다.

골프장 투쟁은 지역활동의 첫 발걸음이었으며, 소중한 자산이다. 임고 공부방 처음 고향으로 내려올 때 농민회는 실무자나 정치진출을 요구하지 않고 농사기반을 잡고 지역에 뿌리 내릴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고 기다려 주었다. 참 고마웠다. 농사 기술을 익히고 골프장대책위 활동을 통해 고향에 뿌리 내리는 것과 함께 농민회 임고면지회 준비에 최선을 다했다. 골프장투쟁이 마무리 되고 농민회 면지회 총무를 맡으며 사고지회였던 지회가 현재는 60여명으로 회원이 늘어났다.

동시에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총무만 12개까지 맡기도 했다. 2013년부터 농협을 바로세우기 위한 공부모임을 시작했다. 괴산 불정 농협 남무현 조합장 초청 강연이 계기가 되었다. 괴산 불정농협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날 저녁 뒷풀이를 하면서 형님들과 “불정도 했는데 우리도 한 번 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매달 3자가 붙은 날에 공부모임을 하기로 결정하고 매달 3일, 13일, 23일은 무조건 모여 꾸준히 공부했다. 복숭아 수확할때는 잠시 쉬자는 나의 제안에도 공부에 쉬는 게 어디 있느냐며 한 명이 모여도 두명이 모여도 공부방은 계속 해야 한다고 했다. 2013년 11월 23일을 첫 시작으로 3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진행하고 있다. 대표, 주체 이런 직책이 없이 모두가 자유롭게 참여하는 학습 모임의 형태를 띠었다.

일방적인 강의나 교육이 아니라 모두가 준비된 만큼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자율학습 조직이었다. 공부모임의 이름도 그냥 “임고 공부방” 이다. 처음에 농협개혁모임, 농협 공부모임, 농협바로세우기 모임 등 다양한 의견이 있었으나 그냥 자유롭게 임고공부방으로 하기로 했다.

임고 공부방의 첫 번째 주제-농협 바로세우기
임고 공부방의 첫 번째 주제는 농협이었다. 임고 농협 정관을 구해 읽고 공부하기로 했다. 공부모임에 참여했던 여성 농민이 임고농협에 가서 정관을 달라고 했다. 안 준다는 것이다. 정관을 구하는 일부터 투쟁하고 공부하는 과정이 되었다. 어렵게 정관을 구해 읽어 보니 정관에 규정된 조합원들의 권리가 너무 많은데 우리는 권리 행사를 하나도 못하고 있었다. 불정농협의 사례를 정리한 논문도 함께 읽고 토론했다. 그 내용이 너무 좋았다.
 
공부모임을 통해 농협에 대한 우리들의 권리에 대해 하나 하나 눈뜨기 시작했다. 농협 이사 선거 시기에 조합원의 권리와 민주적인 선거 참여를 호소하는 아주 상식적인 내용의 현수막을 내 걸었다. 그런데 농협에서 그 현수막을 떼려고 난리를 쳤다. 선관위원회를 소집하고 선거법 위반을 거론하며 별의별 생떼를 다 썻다.

내가 법과 규정을 얘기하며 문제가 없다며 논리적으로 설명하자 “자네 촌에서 법대로 살 수 있는지 보자” 며 으름장을 놓고 문을 박차고 나가 버리기도 했다. 조용하던 시골에 빨갱이가 설친다며 악의적인 여론전도 폈지만, 결국 공부방 회원이 이사선거에 당선되었다.

이사 당선도 중요하지만 조합원의 인식변화와 대의원 진출이 중요하다는 판단에 ‘임고면민과 함께하는 협동조합강좌’를 개최했다. 괴산 불정 남무현 조합장을 초청해 “선진농협 사례 발표” 라는 이름으로 강연회를 준비했다. 협조해주겠다던 농협에서 갑자기 온갖 핑계를 대며 재정적 지원은 물론 장소협조도 하지 못 한다고 했다. 강연회를 얼마남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될지 공부방에서 논의했다.

‘뭐 걱정하노, 우리끼리 하자. 내가 찬조 좀 할게, 그러면 나는 김밥해갈께, 나는 떡 좀 할께’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급히 면사무소 2층을 빌렸다. 이렇게 스스로 준비한 농협 교육에 250명이 넘는 면민들이 참석하여 그야말로 성황을 이루었다. 강연을 들은 농민들이 임고농협에 찾아가 불정농협은 이래 하던데 우리는 와 못하냐며 채근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조합원들이 교육하려고 하는데 장소도 못빌려준다는게 말이 되냐며 거세게 항의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교육자료집은 모자랐고, 어떤 분들은 사비를 줄테니 제본해 주면 나눠주겠다는 분들도 있었다.

기세를 몰아 대의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2차 교육도 성공적이었다. 이런 분위기라면 조합장 선거에 후보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조합장 후보는 내지 못하고 직원 출신이 아닌 농민 출신의 조합장 후보를 밀었다.

우리가 지지한 후보가 600표가 넘는 압도적 표차로 당선되었다. 면에서는 3선에 도전한 조합장이 공부방에 장소를 안 빌려주는 바람에 떨어졌다는 얘기들이 돌았다. 하지만 당선 후 조합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오히려 공부방을 멀리 하려는 태도에 허탈해졌다. 우리들이 조합장 후보를 내서 당선 시킬 수 있는 시기를 놓친 것 같아 많이 아쉽다. 올 초에 치룬 감사선거에서 공부방회원이 떨어졌다. 회원들이 심란해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었다.

|첫째 합병된 타 지역에 무투표로 배분된 2명의 이사와 21명의 대의원수를 조합원과 이용실적을 고려해 조정하지 않고서는 금권선거의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는 오랜 여론을 정면돌파 하기로 했다. 조합장과 이사들은 표 때문에 선뜻 나설 수 없기에 10월부터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조합원들의 대대적인 연명을 받아 이 기세로 이사와 조합장을 견인해 총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둘째, 10월 전까지는 임고공부방에서 복숭아학교를 개최하여 공부방의 대중적 지평과 인지도를 높이기로 했다.
 
농민운동과 정치에 대한 생각
출마하라는 요구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출마한다는 생각은 안 해 봤다. 정치에 관심이 있지만 우리 활동가들은 현실정치에 대해서는 냉소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또 경북에서 정치를 한다는 것은 새누리당이 아니고서는 빨갱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조합장 선거에서부터 기초의원, 기초단체장, 국회의원 선거 등 모든 크고 작은 선거에는 물만 대면 흐르는 물길 같은 선거조직이 버티고 있다.

영천에서는 민정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수 십 년 동안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었던 탓에 조직은 단단하고, 자칭 선거 브로커들의 입김은 대단하다. 이런 현실에서 ‘정치란 과연 무엇인가’ 많이 고민했다. 골프장투쟁과 지역투쟁을 하면서 내가 핏대를 세우며 때로는 읍소를 하면서 옳은 얘기를 해도, ‘자네 얘기가 맞다’ ‘자네 참 훌륭하다’고 인정은 하지만 그것이 나의 생각을 지지하고 엄호해 주는 행위까지 바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더라는 것이다.
 
자네 말이 옳다고 이야기 하지만 지지행위는 공생관계에 얽힌 경우가 많았다. 옳은 것이라고 하여 힘이 없는 사람에게 표를 찍고 동참하면 자신의 이익을 잃고 공생관계에서 찍혀서 손해를 본다. 이런 구조속에서 공생관계의 구도와 판을 만들고 좌지우지 하여 옳고 그름은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시골정치판은 참으로 무섭다고 많이 느낀다.

옳은 것을 주장하는 것이 운동이라고 한다면 정치는 옳은 것을 주장하는데 머물러서는 안된다. 옳은 것이 힘을 얻어 실현될 수 있도록 책임지는 것이 정치다. 참고 참다가도 한번 소리를 내면 울림이 크고 영향력이 생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농민회는 소식지도 내고 재정사업과 대중사업을 결합시켜서 차츰 뿌리내려 가고 있다. 농민회 외에 공부방, 족구모임, 자율방범대, 의용소방대 등 지역에서의 일상적인 교류와 활동의 폭을 넓혀 가고 있다. 내가 없어도 돌아갈 수 있는 조직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대중조직이 시스템적으로 돌아가도록 해야 대중 토대가 살아 있는 정치가 될 수 있다.

현실정치를 깔보거나 혐오스럽게 보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노력해야겠다. 최소한 경북의 농촌에서는 어수룩함을 가장한 선거꾼들이 식당마다 다방마다 조중동TV를 고정시켜두고, 일상적인 입소문과 정치구도를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촌에서 단순하지만 공격적인 논리를 입소문으로 퍼뜨리고 자신에게 유리한 정치구도를 유지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활동한다. 임고면, 영천시에서 이를 깨뜨리고 다른 분위기와 구도를 만드는 것이 과제다.

이를 위한 대중적인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일상 활동과 교류를 하고 있다. 언제 어떤 계기를 잡아서 질적 도약을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향후 운동과 정치에 대한 전망은?
이번 총선에서 대구 지역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던 것은 사실이다. 아직은 대구의 새바람이 경북 영천까지 미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에 대한 젊은 사람들의 반감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당을 떠나 좋은 인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017년 농협 이사 선거, 2017년 대선, 2018년 지자체 선거가 줄지어 있다. 임고면에서는 농협 이사 선거를 출발점으로 하여 대선에서 정권교체라는 큰 지각 변동을 일구어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렇게 되면 2018년 지자체 선거에서 기존 정치 질서에 파열구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옳은 것이 힘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활동가의 임무다. 대중이 옳은 것에 동참했는데 되려 피해를 입도록 해서는 안 된다. 역사와 대중을 책임지는 운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희생한 독립운동가는 보상을 받아야 하며, 매국노는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 그래야 대중이 바뀌고 역사가 바로 선다. 옳은 소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옳음이 힘을 가지고 실현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동네 우리 면 우리 지역에서부터 옳은 얘기를 하고 옳은 편을 모으고, 힘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운동이고 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