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은진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어린 시절 즐겨 보던 잡지에서 미래는 알약 하나만으로 영양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어 더 이상 밥을 먹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될 것이라는 내용을 접한 기억이 있다. 아마도 이런 세상은 그때뿐만 아니라 그 후로도 계속 나왔던 듯하다.
 
이것이 오늘날 각종 영양제로도 나타나지만 식품 가운데도 건강기능식품 등 기능성식품 등으로도 나타난다. 그리고 이런 기능성의 유행이 바로 2세대 GMO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2015년 3월 세계보건기구의 글리포세이트계열 제초제 발암물질 발표와 미국 식약청의 새로운 GMO 승인 발표와 지난 7월 노벨상 수상 과학자들의 비타민A강화쌀(흔히 황금쌀이라고 부르지만 우리나라에는 황금쌀이라는 상표가 있기 때문에 골든라이스라고 불려야 헷갈릴 염려가 없을 듯하다) 옹호성명 역시 2세대 GMO인 기능성 GMO를 위한 행보 가운데 하나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2세대 GMO가 위험한 것은 단지 GMO 기술로 인한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따로 있다.

1992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로에서 있었던 UN주최의 인간환경개발회의에서 리우선언을 채택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진 문제는 생물다양성의 문제였다. 생물다양성은 생태계의 다양성뿐만 아니라 생물종의 다양성을 포함하는 문제이다. 생태계의 다양성 문제가 자연환경 그 자체, 예컨대 산, 농경지, 강, 바다, 사막 등의 환경을 일컫는 것이라면 생물종 다양성은 생물계에서의 다양성을 일컫는다. 그리고 이런 생물종 다양성의 문제는 자연환경에서만이 아니라 농업에서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흔히 유기농을 이야기할 때 생물다양성을 첫 번째로 꼽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농업에서 생물종의 다양성을 보존/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품종의 농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다품종 소량생산을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1960년대 경제성장정책을 시작한 이래 우리나라는 농업에서도 다품종 소량생산보다는 기업농화하는 것을 권장해 왔다.
 
그 결과 다품종 소량생산 대신 단작을 하는 것이 농업에서의 대세가 되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농민들은 해마다 과잉생산과 과소생산의 반복 속에서 가격 급등과 가격 폭락 파동이 지속되었고 이는 농산물 수입을 당연시하는 결과로까지 이어졌다.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것을 농민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알고 있다는 것과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이미 기계화/규모화에 길들여진 농업을 탈바꿈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기농이 확산되면서 점차 기계화/규모화보다는 다양성을 더 중요시하는 농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부에서 보급하는 벼 몇 가지 품종보다는 전통적으로 내려왔던 벼 품종을 찾아 심어보려는 시도도 늘고 있다. 다양한 콩을 찾아내고 심어서 씨앗을 불려나가는 등 농민들의 노력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는 다른 작물에서도 만찬가지이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은 UN이 2014년을 세계가족농의 해라고 정하는 성과를 낳기도 했다.

이런 농민들의 노력은 단순히 농산물이라는 상품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농업에서의 생물종 다양성을 실현해 보이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노력과는 거꾸로 가는 것이 바로 2세대 기능성 GMO들이다. 비타민A가 많은 다양한 작물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골든라이스를 고집한다면 기존의 비타민A가 많은 작물들의 재배가 줄어들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골든라이스만으로 비타민A를 해결하려면 적어도 하루에 10공기 가까운 밥을 먹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없다. 단지 비타민A를 강화했다는 말만 할 뿐이다.

뿐만 아니다. 사실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영양을 섭취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영양섭취만큼 중요한 것이 맛을 즐기는 것이다. 그 맛을 즐기기 위해서라면 다양한 먹거리를 골고루 먹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기능성 GMO가 생산되기 시작한다면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생명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밥과 반찬으로 이루어진 밥상에서 만끽할 수 있는 오감의 만족을 우리는 포기해야 할까?

단작을 부추기고 먹는다는 즐거움을 앗아가려는 2세대 GMO, 역시 안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