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료관리법 시행규칙 원료배합비율 표시 조항 현실화 해야

▲ 이태근 흙살림 회장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것은 헌법의 기본 원칙이다. 그러나 똑같은 법이라도 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판결이 달라질 수 있다거나, 법 자체가 모순이 있는 경우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현재 우리나라의 법률은 입법부인 국회에 의해 만들어진다. 다음으로 법률을 실제로 시행하는 데 필요한 상세한 세부 규정을 담아 만든 것이 시행령이다. 시행령은 대통령령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법률을 시행함에 필요한 세부적인 규칙을 정의해 놓은 문서를 시행규칙이라고 한다. 시행규칙은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정부기관의 장관이 만든다.

사실 법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시행령과 시행규칙이라는 용어가 많이 생소하다. 시행령이나 시행규칙도 법령의 일부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입법을 하는 국회에서도 법률을 제정은 하지만 그에 따른 시행령과 시행규칙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법령의 가장 세밀한 부분인 시행규칙은 우리가 실제로 지켜야 하는 구체적인 사항들이다.

비료관리법이라는 법이 있다. 비료관리법의 시행규칙 제 14조에서는 퇴비 등의 ‘원료명 및 배합비율’ 표시에 관한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퇴비를 만들어오면서 이 조항의 불합리함에 대해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동안 법이 정한 퇴비의 보증 성분(공정규격)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 공정규격 내용은 퇴비의 유기물 함량과 유해성분의 기준치 준수 여부, 탄질율, 염분함량 및 수분함량 그리고 부숙도와 같은 퇴비의 품질에 관계된 사항들이다. 농촌진흥청에서 고시한 퇴비의 공정규격에도 ‘원료의 종류와 배합비율’에 대한 조항은 없다.

퇴비 원료라는 것이 전부 부산물들로서 수분함량과 비중이 다 제각각인지라 애초에 규격화할 수 없고, 따라서 각 퇴비원료의 초기 배합비율을 정확하게 지킨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어찌어찌하여 초기 배합비율을 맞추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퇴비라는 것은 장기간에 걸친 부숙, 발효 과정을 통해 수분 함량 등의 물리적인 성질이 시시각각 변화하기 때문에 최종산물에 대해서나 규격화나 성분보증이 가능하다. 일본을 비롯한 유럽, 미국 등의 선진국에서도 퇴비의 원료배합 비율에 관한 내용을 상세히 규격화하거나 표시(보증)토록 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퇴비의 품질을 규정짓는 보증 성분의 위반은 단순 비료관리법 위반에 해당되지만 애초에 보증하기가 불가능한 ‘원료의 배합비율’위반은 형법 상 사기죄로 처벌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보증성분 위반보다 중요하지 않은 원료배합비율 위반이 더 큰 범법행위로 치부되는 아이러니가 생기고 있다.

퇴비도 하나의 상품이다. 상품을 판매하는 데 있어 정확한 성분을 보증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상품에 들어가는 원료명과 그 배합비율을 전부 공개·보증하라는 것은, 기업의 제조 노하우를 공개함과 동시에 불가능한 것도 실천해야만 한다는 것과 같다. 게다가 퇴비 보다 더 사안이 민감한 사료관리법이나 식품위생법에서조차 원료배합비율을 모두 규격화하거나 표시하게끔 규정하지도 않는다.

설령, 초기 배합비율을 보증표에 넣어야 할 다른 이유가 있어서 시행규칙으로 도입했다면 이를 지키는지에 대한 현장 확인과 감독이 이루어져야 한다. 원료를 배합비율대로 정확히 혼합하려면 모든 퇴비공장에는 거대한 저울을 갖추도록 의무화되어야 하지만 의무화도 안돼있고, 이런 시설을 갖춘 곳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런 현실에서도 퇴비를 생산해서 사업을 하려면 배합비율을 준수하라는 것이 아이러니이다.
그리고 퇴비의 원료는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변동이 크다. 쌀겨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가격이 폭등하거나, 국제적인 문제로 유박의 수입에 차질이 생기거나 하는 등의 돌발 상황이 수시로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 처음에 등록했던 원료의 정확한 배합비율을 맞추기란 어려운 일이다. 퇴비의 품질에 관한 보증 성분을 지키는 선에서라면 원료의 변동은 필수불가결하다.
보증 성분을 준수한 퇴비가 포장지에 표시된 원료배합량과 일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형사상 범죄자로 몰리는 것은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서 말했듯 시행규칙은 전문부처에서 만드는 법규이다. 그만큼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법률의 세부적인 규정을 합리적으로 정하기 위함일 것이다. 만약 잘못된 규칙이 있다면 당장 고쳐서 더 이상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지만 법 자체가 잘못되었다면 그 평등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든 것이 법이지 잘못된 잣대로 무고한 사람들을 범죄자로 모는 것이 법의 본질은 아니다. 잘못된 법 앞에서 억울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사회의 정의는 사라진다. 국가권력은 이 점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