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힘입어 6월, 83살 정주영 현대회장이 500마리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넘었다. 그해 11월 17일엔 금강산 관광이 시작됐다. 마침내 2000년 6월 13일~15일 평양에서 김대중-김정일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됐고 남북공동선언문이 발표됐다.  6·15공동선언 이후 현대아산과 중소기업들이 중심이 돼 개성공단사업이 추진됐다. 7월에는 남북농수산 협력분야 각 전문가들이 모여 (사)통일농수산사업단을 결성하면서 농업분야의 남북교류협력을 추진하게 된다.

2005년 10월 7일 북측 성북리에 돼지 26마리가 보내지고 2008년 박왕자 피살사건 후 2010년 남북한 교류가 전면 중단될 때까지 북측에 정기적으로 드나들면서 양돈 사육에 대해 현지지도를 해왔던 (사)통일농수산사업단 양돈사업팀 소속 수의사 김준영 씨를 만나 당시 돼지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는 여의도 식량닷컴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한기자 기자>

▲김준영(사)통일농수산사업단 양돈사업팀 소속 수의사

▲북측과 양돈사업을 어떻게 시작하게 된거죠?
= 2004년 12월에 북측이 양돈장을 만들어 달라고 들었어요. 2005년 초 설계를 끝내고 6월에 방북을 했죠. 근데 북측은 지원만 해주고 들어오지는 못하게 했어요. 주체농법으로 다 할 수 있다는 거예요. ‘남쪽 사료를 줄 건데 남쪽 사료를 먹여본 적이 있냐, 남한 약품을 사용해 본적이 있냐, 당연히 없지 않냐. 당신네가 전지전능한 것도 아니고, 이것을 하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전문가가 와서 직접 봐야 된다. 내가 돼지전문가인데 이것만큼은 들어주라. 그렇지 않으면 돼지 못 보낸다’고 했죠. 그럼 누가 올 건데 하고 물어보더라구요. 내가 갈 거라고 하니까 그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해서 9월부터 들어가게 된 거죠.

▲서류가 한 장짜리 엉터리였다?
= 남한 정부에 검역증을 제출해야 했죠. 북한의 협동농장에 있는 수의사 도장을 받았어요. 한 장짜리. 처음에는 우리 농림부에서는 ‘이게 무슨 공문이냐. 뭐가 있어야지 공문으로 인정해주지…’라면서 인정을 안 해 주는 거예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게 최선이라고 했죠. 그나마 노무현 정부니까 농림부도, 통일부도 그 한 장짜리를 받아 준거예요. 북쪽에서 받아온 유일한 공문서로 쳐 준거죠. 남쪽에 ‘검역당국’ 이렇게 써 놓고, 수신처도 없고, 이쪽에서 보면 달랑 종이 한쪽 가져온 거예요. ‘이거 도장이 맞냐’라고 따지면 사실 할 말도 없었죠. 조선인민주의공화국에 무슨 원산지소 무슨 지국에 무슨 검역관이 도장 하나 찍은 것뿐이었어요. 근데 그걸 인정해 줬어요. 남북이 사이가 좋으면 그게 되는 거 같아요.

▲남쪽에서 돼지는 어떻게 준비했나요?
= 저는 당시 돼지농가 컨설팅을 하고 있었는데, 그 사업을 돼지농가들에게 말했더니 많은 농가가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죠.

관심이 대단했어요. 그러나 무상으로 제공해야 된다, 질병에서 완벽해야 된다는 선발기준에 통과된 곳이 다비육종이었죠. 모돈 24마리와 종돈 2마리 해서 26마리가 검역을 끝냈죠. 당시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수의사 입장에서 다시 검사해 한 마리씩 다 ‘질병이 없다’라는 증명서를 써서 북측 수의사한테 보냈어요.

북쪽은 수의사의 권한이 강해서 수의사가 허락안하면 입식과 도축을 하지 못해요. 10월 7일 처음으로 돼지가 북측 성북리에 들어갔죠. 그 다음해 4월 7일 첫 새끼를 낳았어요. 정확히 6개월만이죠. 13마리 낳아서 11마리가 살았죠. 2마리는 죽고. 우린 통일돼지라고 하고 북한은 월북돼지라고 불렀죠.

▲돼지기르기는 어떻게 했죠?
= 9월부터 매달 정기적으로 2박 3일씩 체류하면서 교육했죠. 북쪽사람들은 교육을 하면 습득이 아주 빨라요. 제가 본 바로는 문맹이 없었어요.

▲매달 정기적으로 방문을 했는데 언제까지 했죠?
= 2005년 10월 7일 돼지가 성북리 협동농장에 들어가고 2008년 7월 박왕자 사건이 터지고 다음, 다음날이 마지막이었는데요. 3년 정도 들어간 거죠. 성북리 양돈장 바로 옆이 박왕자 사건이 터졌던 해수욕장이에요. 그때 북측에서 사과를 했는데, 이명박 정부가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죠. 금강산 관광은 취소됐고, 우리는 그래도 다음다음날까지 갔었죠. 현대아산 직원들 몇몇은 계속 남아있었는데요. 사료는 2009년까지 보내졌다가 그해 5·24조치로 중단됐죠.

▲북한에는 돼지가 없었나요?
= 아뇨, 북쪽은 70년대 초만 해도 인구가 2,000만도 안됐었는데 400만두 이상의 돼지를 키웠던 걸로 추정돼요. 북쪽에 가 보면 비어있는 양돈장이 많았죠. 돼지덕분에 함경도 빼고는 북한 전 지역을 많이 돌아다니고, 평양도 4번이나 갔다 왔는데, 우리보다 더 많이 돼지를 키운 흔적이 있어요.

▲돼지에 비해 직원이 너무 많았다면서요?
= 성북리 양돈장에 혼자 다녔죠. 약품도 정기적으로 가져다주고 양돈장 사양관리일지를 쓰도록 했죠. 26마리에 직원이 4명, 남측에서는 500마리에 1명인데 그런데도 인원이 부족하다고 그러더라구요. 그것도 20대~40대까지 젊은 농민이었죠. 1회용 부직포 방역복도 주면서 1회용이라고 알려줬는데도 아껴 입고 다니더라구요. 자랑하는 것 같아 그냥 내버려뒀죠.

▲북한돼지와 남한돼지가 차이가 있나요?
= 종돈이 다른데 북측은 30년 동안 개량을 안 한 거예요. 북측에서는 8~9마리 새끼를 낳으면 잘 낳은 거라고 했죠. 그런데 우리는 그때 이미 13~14마리를 낳았어요. 이미 종자가 다른 거죠. 축산에서의 종자는 정말 중요해요. 돼지는 1년에 2.3~2.4회전을 할 수 있는데 115일만에 새끼를 낳고 25일 젖을 떼고 5일 후에 인공수정하는 거죠. 근데 북측에서는 포유기간을 40일도 좋고 50일도 좋고 젖이 나올 때까지 먹이는 거에요. 그러니까 2회전 이상을 하기가 어렵죠.

▲남한돼지에 대한 반응은?
= 북쪽 검역관과 수의사가 남쪽 돼지를 처음 보자마자 눈이 동그래졌어요. 책에서만 보던 돼지를 처음 본거예요. 이건 진짜 좋은거라고 딱 알아보더라구요. 그전에 우리돼지는 6개월이면 110kg은 충분히 나간다고 했지만 믿지 않았죠. 그쪽은 100kg은 커녕 90kg 겨우 넘었으니까요. 남쪽에서 사기치는 줄 알았대요.

▲돼지를 못 잡게 했다는 얘기는?
= 북쪽은 90kg가 되면 돼지를 잡아요. 남한돼지가 6개월에 110kg까지 크는 걸 그들에게 실제로 보여줘야 하기도 하구, 저도 북에서도 그렇게 되는지 확인해야 했죠. ‘남쪽에서 가져온 사료로 키우지만 북쪽에서 덜 클 수 있다’하면서 보위부한테 절대 내 허락 없이는 돼지를 잡지 못하게 했죠. 약속을 지켜줘서 100% 성공한 걸 눈으로 다 증명했죠.

▲사업예산은 어떻게 마련됐나요?
= 남북협력기금으로 양돈장 시설만 했고 나머지는 민간이 다 알아서 하라고 했죠. 민간에서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돼지, 사료, 약품, 축산기자재 모두 만들어냈죠. 약품은 유효기간 폐기 직전의 것을 얻어다 줬구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진길부 도드람양돈조합장님이 사료는 다 전담해 주셨죠.

▲양돈장이 인기가 있었나요?
= 성북리에 들어간 돼지가 8개월도 되지 않아 금방 200마리가 넘었죠. 내 말에 신뢰가 생긴 거예요. 성북리 옆 동네 금천리, 삼일포리 협동농장 사람들이 보위부를 설득해서 너도나도 양돈장을 만들어달라고 끌고 왔어요. 그래서 2006년에는 금천리 종돈장을 만들어 모돈 50두와 웅돈 6마리가 들어갔죠. 2007년 삼일포농장에 모돈 20두, 개성 송도리에 모돈 30두가 들어갔어요.

▲박왕자 사건이 터지고 이후 돼지 소식은 들었나요?
= 2010년 현대아산 직원 2명이 마지막으로 철수하기 전까지 그들을 통해 돼지 소식을 전해 들었죠. 2009년 5·24조치로 사료까지 중단되자 북측은 군부대 잔반, 학교 잔반 등을 회수해 돼지를 키우고 있다고 했어요. 그러나 돼지수가 많이 줄어들었을 거예요. 사료가 없으니까요.

▲마지막 하고 싶은 말은?
= 2007년 남북공동회담 합의사항 5개 중 1개가 5,000두 규모의 양돈장을 건립하는 거였죠. 양돈장 건립에 50억, 종자보관에 70억의 예산이 잡혀있었죠. 대통령이 사인까지 했는데, 아무리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해도 중단될 줄은 꿈에도 몰랐죠. 축산 쪽은 거의 준비가 다 되어있어요. 설계도까지…. 북쪽은 돼지사업만큼은 신뢰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를 보내주면 신뢰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지 않을까요.